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서 주인공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다. 상대가 유부남이기에 그를 간절히 바라고 욕망하지만 외부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그를 욕망하고 그 과정에서 이 글의 제목과 같이 단순한 열정이 생긴다. 그를 사랑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삶이 활력이 돋는다. 하지만 금단의 사랑이기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표현하기도 어렵다. 주인공의 사랑은 결국 그가 타국으로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실패로 끝난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재회를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토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떠나가는 삶의 항해를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금지된 것들을 꼭 하지 말아야할까? 내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시키는 일을 사회적으로 금지했다고 해서 무조건 하지 말아야할까? 삶은 유한하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야하는 이유는 스스로 찾아야한다. 불교에서 나온 '공수래 공수거' 마냥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떠나가기에 떠나기 전에 우리의 삶을 즐겨야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삶을 즐길 수 있을까? 각자 삶을 즐기는 방법은 다르지만 자신의 욕망의 실현에 있다고 본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욕망만 추구하다보면 삶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잡힌 적절한 욕망은 한 사람의 인생을 훌륭하게 만든다. 하지만 욕망의 방향성과 적절함의 정답은 어디에 있을까? 아무도 알려주지도 않고 알려줄 수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욕망을 향해 달려가며, 그 과정에서 단순한 열정이 생기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욕망은 단순히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자 인간 고통의 근본원인이다.'
쇼펜하우어에게 욕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아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으며, 붓기를 멈추면 물이 말라버리는 형벌과 같다고 하였다. 그는 욕망을 무한정 긍정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을 줄임으로써 평화를 얻는다고 하였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도 유명해진 노년에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한 아가씨에게 포도를 건네면서 추파를 보냈다고 한다. 그도 독신이었지만 여성과의 사랑을 바랬던 것은 아닐까? 욕망에 충실한 삶과 욕망을 비우는 삶 중에 욕망을 비우는 삶이 더 힘들다. 욕망을 비우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이미 성인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뿐일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한번 사는 인생에서 단순한 열정도 없이 인생이 흘러간다면 인생이 너무 부질없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의 주인공도 가슴이 시키는대로 열정이 끌리는대로 사랑하였다. 금단의 사랑일지라도... 나의 열정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나이는 드는데 아직도 나는 방황하고 있다.